시간의재
문장에 대해서 본문
나는 소설이라는 장르에는 관심이 없다. 어쩌면 ‘문학’이라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하긴 문학이나, 소설도 나한테 관심을 가진 건 아닐 테지만, 또한 내 관심사 따위야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을 테지만, 일일이 그런 걸 신경 써서야 이렇게 문장을 쓸 이유 같은 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가끔 내가 예전에 썼던 문장들, 소설이든 게시판에 올렸던 짧은 글이든, 읽다보면 스스로도 참 한심한 소설(문장)을 썼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부 다 그런 건 아니고, 개중에 몇 개는 지금 보아도 참 대견스럽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내가 부럽기도 하다. 지금의 내가 가지지 못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운 얘기일지 모르지만, 분명히 이전보다 지금 나는 더 문장을 잘 쓴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어떤 요소들은 그때가 지금보다 나았는지도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그 시절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문장을 쓰는 데 있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들도 알게 되었고, 스스로 원칙들을 세우기도 하고, 또한 나름대로의 뚜렷한 방향성도 가지게 되었다. 요컨대 ‘문장’이 뭔지 조금 알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 중의 하나를 얘기하자면, 바로 소설이라는 장르, 또는 문장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내가 이미 말한 그대로다. 즉, 문장을 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장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얽매이지 말라는 것은,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얽매라는 것이다. 이것은 난간을 붙잡고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 당신은 난간의 반대편에서 난간을 붙잡고 위태롭게 몸을 지탱하고 있다. 난간을 놓친다면 당신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처지에 놓여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난간을 꼭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다면, 당신은 결코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안전한 난간의 안쪽으로, 즉 반대편으로 다시 난간을 타 넘어야 하는가? 아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애초에 왜 난간의 반대편으로 넘어갔는지를 기억해 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난간을 타넘어야 하는 행동을 유발시켰고, 또한 난간 그 자체를 붙들고 있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으로 당신을 이끌었다. 그것은 ‘그 난간’을 통하지 않고서는 닿을 수 없는 무엇이다. 문장을 쓴다는 건, 그 문장이라는 난간을 붙들고 손을 뻗는 행위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난간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난간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난간에 쏟는 관심은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충분한 팔 힘으로 붙들고 있는 것으로 족하다. 난간을 붙들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지대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난간을 붙들고 있는 충분한 팔의 힘은, 문장의 정확성 등등 이고, 다른 팔이 닿기 위해 향한 곳에 있는 그 무엇은, 하나의 세계다. 그리고 언제나 당신은 당신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멀리 팔을 뻗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해서 손에 쥔 그 무엇은, 당신이 멀리서 바라보았던 그것과는 다르다. 여기에 문장을 쓰는 재미가 있고, 어쩌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난간을 붙들고 있는 충분한 팔의 힘은, 문장의 정확성 등등 이고, 다른 팔이 닿기 위해 향한 곳에 있는 그 무엇은, 하나의 세계다. 그리고 언제나 당신은 당신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멀리 팔을 뻗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해서 손에 쥔 그 무엇은, 당신이 멀리서 바라보았던 그것과는 다르다. 여기에 문장을 쓰는 재미가 있고, 어쩌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