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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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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춤에 대해서

물고기군 2002. 4. 2. 22:31

지금의 나를 떠올리면 스스로도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일이라 생각되지만, 한창 춤에 재미를 붙였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여기서의 춤은 전문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춤이다. 나이트 같은 데서 추는 춤 말이다.

그건 재수시절이었다. 1992년.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한창 춤에 재미를 붙였던 때로부터 나는 열 살이나 더 나이를 먹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1992년의 ‘락 카페’라면 금방 어떤 분위기의 춤추는 곳이었는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잠깐 설명하자면, 그곳은 얼핏 보면 일반 카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럴만한 시간이 되면 시끄러운 댄스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특별히 마련된 플로어가 없이 앉은 자리 근처에서 일어나 춤을 춘다. 또는 플로어라 할 만한 중앙의 넓게 트인 공간이 있던 락 카페도 있었다. 지금에도 여전히 홍대 근처에는 그 비슷한 형태의 춤을 출 수 있는 카페가 있는데, 이제는 ‘락 바’라 부르는가 보다. 그러나 그것과는 똑같지 않다. 지금의 ‘락 바’가 일반적인 ‘나이트클럽’과 달리, 말 그대로 하드 락을 위주로 음악을 선곡하고 있다면, 그 시절의 ‘락 카페’는 훨씬 소프트했다. 주 고객층도 대학 1, 2학년생이었던 것 같다. ‘락 카페’의 전성 시기는 내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바로 92년을 피크로 점점 사양 세에 접어들어서 93년을 거쳐 94년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 부흥과 몰락은 일본식 주점인 ‘로바다야끼’의 그것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실제로 경희대 앞에도 93년도에는 두서너 군데의 ‘락 카페’가 있었다. ‘락 카페’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나이트클럽’에 비해 값이 쌌다는 데 있다. 값이 싼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싼 티가 나지 않았다. 마치 자동차와 오토바이 같다고 할까? 싼 승용차를 살 돈이면, 번듯한 오토바이 한 대를 구입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재수시절, 여름방학이 끝나고 그해 가을까지 홍대 앞의 락 카페를 들락거렸다. 그전에도 한두 번 ‘나이트클럽’을 가 본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전혀 춤을 추지 않았고, 억지로 춰야 할 때면 굉장히 곤혹스러워했다. 그런데 그 시절, 내 곁에는 정말로 춤을 잘 추는 친구가 있었다. 그 판에서 실제로 얼마만한 수준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에는 정말 잘 췄다. 나와 또 다른 내 친구는, 학원 옥상에서 수업을 빼먹고 그 친구에게 춤을 배웠다. 이제 그 친구의 이름도, 그리고 어떻게 해서 만난 친구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옥상에서 우리에게 춤을 가르쳐주던 그 친구의 모습만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건 다행히도 초보자도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일명 ‘하우스’라는 춤이었다. 절대 어렵지 않다. 동작이 크지도 않다. 포인트는 자연스럽게 리듬만 타면 된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은 지하철을 타고 홍대 앞으로 갔다. 나는 그날이 처음이었고, 다른 친구들은 이전에 몇 번인가 와 본적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정직하게 고백하자면, 우리에게는 결코 춤을 잘 추고자 하는 욕심 같은 건 없었다. 우리의 목적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여자를 꼬시는 것이었다. 대체 재수생 시커먼 남자 셋이 모여서 생각할게 그것 말고 달리 뭐가 있겠는가? ‘락 카페’에서 여자를 만나는 시스템은, 다시 일반 ‘나이트클럽’의 그것과 비교하자면, 따로 웨이터가 여자를 혹은 남자를 끌고 다니면서 테이블마다 부킹을 시켜주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직접 테이블을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었다. 자세하게 설명하면 우리들 중 누군가 한 명이 댄스타임이 끝나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면 미리 점찍어둔 여자들 테이블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그녀들에게 말을 건다. 말이 잘 되면 합석을 하든지, 아니면 테이블은 그대로 두고 몇 타임 정도 같이 춤을 춘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우습게 들리겠지만, 그 시스템은 나름대로 스트레이트하고 정직하다. 잘 되지 않는 경우 실제로 개망신이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는 젊었고, 비겁할 수 없었다. 그 정도의 망신은 감당할 수 있었다. 미인을 얻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우리들에게는 돈이 없었다. 집에 있는 양주를 가져다 동네 수입품 전문점에 팔아서 유흥비를 댈 정도였다. 내 기억으로 그때 시바스리갈은 2만 5천원 정도, 로얄샬로떼는 7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위에 말한 락 카페 비용은 셋이 합쳐 2만원이면 되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처음 몇 번은 아주 쉽게 여자를 꼬실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잘 되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다. 그럴 때에도 우리는 결코 의기소침해지지 않았는데, 맥주병을 부딪치면서 우리가 함께 외친 구호, ‘젊은 밤 후회 없다.’를 보면 당시의 우리가 얼마나 용감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끼리 재밌게 놀면 된다. 그렇게 해서 처음 들어갈 때의 목적, 즉 여자와 상관없이 우리끼리 춤을 추는데 열을 올렸다. 사실 그렇게 열심히 춤을 추다보면 또 자연스럽게 여자를 꼬실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기도 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성공시대’의 멘트 같군. 저희는 그저 열심히 춤을 추었어요. 그러다보니 여자를 만날 수 있게 됐고요. 운운. 그것이 무엇이든 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최선을 다 할만한 가치도 있는 거다. 시끄러운 댄스음악이 흘러나오면 우리는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의 홀로 나아갔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남들과 상관없이 우리끼리 춤을 췄다. 물론 잘 추는 춤은 아니었다. 테크닉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보란 듯이 격렬하게 춘 것도 아니다. 정말로 춤을 추는 게 재밌었다. 다리는 리듬에 맞춰 반복되는 스텝을 밟고 손을 움직이고 고개를 흔든다.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마를 훔치면 땀방울이 긴 머리를 적신다. 추다가 지치면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맥주를 죽 들이켰다. 그리고 홀을 둘러본다. (끝까지 여자를 꼬시고자하는 미련은 버리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때 그 락 카페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생이었을 것이다. 재수생은 우리뿐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우리는 춤을 추고 싶었던 것뿐이고, 여자를 꼬시고 싶었던 것뿐이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괜히 가슴이 설렌다. 한껏 부풀어서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고무풍선을 바라볼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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