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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좋은 세상에 대해서 본문

단상

좋은 세상에 대해서

물고기군 2002. 4. 4. 14:04
좋은 것과 더 좋은 것,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운이 나빠서 덜 좋은 것을 선택하게 된다 해도, 그건 나름대로 괜찮다. 에이, 다른 게 더 좋았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뭐. 하지만 반대로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최악이다. 물론 운이 좋아서 덜 나쁜 것을 선택하게 된다면, 위안이라도 삼을 수는 있다. 다행이네. 더 나쁜 것이 아니니 말이야. 하지만 씁쓰레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전혀 행복할 수 없다.
주머니에 흰 공과 검은 공이 들어있다. 편의상 흰 공을 ‘좋은 것’, 검은 공을 ‘나쁜 것’이라고 해보자. 사람들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공을 골라야 한다. 운을 시험해보는 것이다. 흰 공을 뽑아든 사람은 행복할 것이고, 검은 공을 뽑아든 사람은 불행할 것이다. 하지만 그 주머니 앞에선 모든 사람은 공평하다. 모두가 주머니 안을 들여다볼 수 없고, 모두에게 한 번씩만 기회가 주어진다. 그게 위안이 되나? 만일 안에 들어 있는 100개의 공중에 흰 공이 단 한개만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몽땅 검은 공만 들어있을 수도 있다. 그것을 누가 알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그 주머니 안에 몽땅 흰 공만 들어있는 세상이다. 물론 그 흰 공중에는, 아주 밝은 흰 공, 광택이 나는 흰 공, 조금 때가 낀 흰 공, 얼룩이 진 흰 공 등등,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지만, 희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만일 조금 얼룩이 지고 광택이 없는 흰 공을 택했다 해도, 에이, 아쉽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어쨌든 흰 공이니까 말이야, 하고 말할 수 있다. 혹은 다른 사람이 정말 밝고 광택이 나는 흰 공을 뽑아드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해도, 조금은 질투가 나고 부럽긴 하겠지만, 나름대로 만족하며 돌아갈 수 있다. 집에 돌아가서 그 흰 공을 정성스럽게 닦아볼 수 있다.
나는 ‘좋은 것’, 또는 ‘행복’이 계량화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히 어느 정도 상대적인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상대적일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중에, 더 나쁜 것이 아닌 그냥 나쁜 것을 뽑아 들었다 해서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 고통이나 불행도 분명 상대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고통이고 불행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조금 더 밝게 빛난다 해서, 검은 공이 흰 공이 될 수는 없다.
요컨대, 어째서 주머니 안에 흰 공만을 채울 수 없는가 라고 묻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검은 공의 개수를 줄이는 일이 어째서 가능하지 않은가? 검은 공만 가득 들어 있는 주머니를 두고, 아무도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고, 한 번씩만 기회가 주어진다 해서, 그것을 공정하다 말할 수는 없다. 주머니 안의 공의 배합이 이미 정해진 것이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 주머니는 이미 주어져 있다. 우리에게는 선택권만 있을 뿐이다. 겉보기에는 그럴 듯하다. 공정한 듯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애초에 공을 집어넣은 사람이 있지 않겠는가? 누가 공을 집어넣었느냔 말이다. 궁금하지 않아? 나는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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