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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나쁜 꿈 본문

단상

나쁜 꿈

물고기군 2001. 7. 1. 17:24

  요근래 자주 나쁜 꿈을 꾼다. 꿈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나쁜 꿈이었다는 느낌만은, 잠에서 깨어나고도 오랫동안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나면 머리가 이상하다. 두통과는 다르다. 아프지 않다. 조이는 것 같고, 잡아당기는 것도 같다. 자는 동안 누군가 내 머리를 두고 심한 장난을 친 것 같다. 수학여행이나 단체로 떠나는 여행에서 자는 동안 친구들이 벌이는 장난처럼 말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기분이 몹시 나쁘다.

  지금껏 삶을 긍정하면서 살아왔다고 믿었다. 고민에 빠져있는 친구에게는, 너는 엄살을 떨고 있을 뿐이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은 그저 자기 합리화이거나,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점이니 입장이니, 하는 말들을 떠벌였다. 긍정이란 부정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부정하면서 얻는 긍정이란 얼마나 비겁한 것인가?

  병들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다시피, 하나의 증상에 대한 해석이다. 해석되기 전에는 그것은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다. 그것이 일반적인 증상, 예를 들어 하루종일 밥을 먹지 않았더니 배가 몹시 고프다든지, 100미터를 전력질주 했더니 숨이 가빠진다든지 하는 것들이라면 그것은 병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신호에 불과하다. 밥을 먹거나, 한동안 숨고르기를 하면 다시 정상이 된다. 나는 내가 가진 문제들이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더라도, 잠을 한숨 푹 잔다든지,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면 금방 정상이 될 수 있는 평범한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것을 병이라고 규정지어야 겠다. 나는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는, 어떻든 간에, 그것을 병이라고 규정한 후에야 이뤄질 수 있다. 

  자연의 본래적인 경향은 질서가 아니라 무질서다. 굳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는 과학적인 이론을 들이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통제되지 않고 조절되지 않은 힘이란 무용한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행하는 것은 창조나 건축이 아니라 파괴요 해체다. 만일 아무도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평화로운 세계같은 것은 성립될 수 없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다. 자연은 평화같은 것을 모를 뿐더러, 오히려 평화하는 정반대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 자연적인 것은 악마적인 것이다. 하나의 유기체가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자연적인 것을 거슬리는 일이다. 그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60년 혹은 70년 동안 그렇게 고도로 조직되고 질서잡힌 하나의 유기체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다. 매순간 우리는 살아있기 위해, 죽음을 이겨내기 위해 얼마만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가? 그런데 어떻게 삶을 긍정한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서 자신의 존재가 성립되길 바라는가?

  자주 나쁜 꿈을 꾸다보면, 꿈이 현실을 잡아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꿈의 영역이 스스로 끊임없이 자가생식을 하는 괴물처럼 점점 부피를 키워서 현실의 영역을 포함시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꿈에는 분명 내가 없다. 내가 꾸는 꿈에는 내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나는 언제나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바라보는 사람은 나다. 내 꿈에서, 나는 나를 바라보고, 나는 나에게 바라다 보여진다. 아, 나는 나쁜 꿈을 꾸고 있구나. 내가 사는 이 삶이 나쁜 꿈이구나. 내가 나쁜 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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