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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다시 스머프 마을 본문

단상

다시 스머프 마을

물고기군 1999. 11. 4. 03:53
   틀림없다. 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차례를 기다리며 여러 변명을 궁리하는 어린애처럼. 하지만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주사는 맞아야 하고, 그것이 옳다.

   난, 사회나 현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세수를 하고, 이빨을 닦고, 커피 둘 설탕 둘의 커피를 들고, 책상에 앉았다. '행복'이라고.
   그래, 고등학교 시설, 놀이터 벤치에 앉아 마시는 맥주처럼. 이제 막 해가 져서 어둠은 새 것이고, 뛰어 놀던 아이들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믿지 못할 잔향으로 텅 빈 놀이터에 남아 있다. 수첩에는, 전화번호가 잔뜩 적혀 있고, 그래서 난 억지를 부려본다. 막 어두워지는 하늘 빛깔은, 옆은 파랑에서부터 보라빛까지, 땅 가까운 곳에서부터 하늘 천장까지, 번져 있다.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머그 컵에 막 끓여낸 커피가 가득하고, 담배는 두 갑, 스텐드의 불을 끄면, 어둠 속에 오직 컴퓨터 모니터만이 밝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카세트 데크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알아? 나한텐 이게 행복이라고.

    다시 스머프 마을 이야기다. 난 스머프 마을의 소설가가 되고 싶다. 매일 아침, 스머프 광장에 파란 스머프들을 모아놓고, 내가 밤새 쓴 소설을 낭독한다. 그들을 감동시키고 싶은 건 아니다.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들을 바른 길로 계몽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연애편지 같은 것이다. 이봐, 정말로, 난 너를 사랑한다고. 여자는 행복해한다.

   하지만 잘 될 리가 없다. 스머프 마을의 소설가는 어떤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로맨스? 틀렸다. 스머프 마을엔, 여자라곤 스머패트 밖에 없다. 모험? 결말은 항상 똑같다. 결국 파파 스머프가 모든 걸 해결하고, 위기에서 탈출한다. 아, 스머프가 되기엔, 난 너무 크고, 나이 들었다. 게다가, 애시당초 이 세상에, 스머프 마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는 떠나고, 영원히 답장은 오지 않을 것이다.
   틀림없다. 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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