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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해질녘 열차 안에서 본문

단상

해질녘 열차 안에서

물고기군 1999. 10. 20. 03:42
해질녘에 열차를 탄다. 선배는 내게 서울이 싫다고 말했다. 책을 덮고, 바깥, 거리를 본다. 높은 빌딩 꼭대기에 조그만 빨간등이 반짝인다. 알아, 저건 하늘을 나는 것들이, 부딪치지 말라고 경고하는 등이지.
하늘은 나는 것들은, 하지만, 더 높이 난다. 멀리, 도시의 끄트머리, 희미한 산등성이, 불그스레한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다.
항상 아름다운 것들은, 먼데 있다.
먼 산에 내리는 겨울눈을 본 적이 있다. 제대를 반년 남겨둔 겨울, 여자에게선 답장이 오지 않았고, 우두커니 난, 먼데만 바라봤다.
먼데 있는 것들은, 항상 아름답다. 난 말을 뒤집어 본다.
열차는 풍경들을 보여주기 위해, 속도를 줄인다. 고개를 돌려, 책을 펼친다.

언제부턴가, 하루는 내게 빚이었다. 넌 네 삶에 임대료를 지불해야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산다는 것은, 각오하는 것이다.
오늘, 불쑥 열차에서 내리며, 궁금해한다.
빚을 다 갚고 나면, 내 生을 돌려 받을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각오하지 않으리라. 아무 것도, 더 이상 갚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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