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크리스마스 캐롤 본문
비가 내렸나 보다. 잠결에 비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루종일 잠을 잤다. 일곱시에 맞춰 논 자명종에 일어나지 못한 날은, 오래 잠을 자게 된다. 하나가 포기되면, 전부가 포기 되는 것처럼. 몇 번이나,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게 되는데도, 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서지 않는다. 또, 그런 날은 아무와도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 없는 날이다. 내가 없는 날이고, 내게 없는 날이다. 인생을 거꾸로 세보면, 그다지 아깝지 않다. 내게 그런 날은 정말 많다. 한 없이 게으르고, 나른한.
[세친구]란 영화를 스물 일곱번이나 보았다는 사람이 있다. 처음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영화를 떠올려보면, 알 것 같다. 영화의 장면 장면이 내 삶과 닮아 있구나.
형 방에 누워 있는 걸 좋아했다. 누우면 커다란 창이 보이고, 창 밖으로 하늘이 보였다. 아직 LP판이 음반시장을 주도했던 시절, 형 방에는 턴테이블이 있어서 가끔씩 자글자글하는 소리가 섞인 LP 판을 들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가을에 듣는게 가장 좋다. 아침에 잠을 깨면, 아 춥구나 싶은 때, 감기 기운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괜히 코가 시큰해질 때 쯤.
참 많은 겨울을 보냈다. 가끔씩, 내가 대학에 들어와서 보냈던 많은 겨울의 일들을 떠올린다. 신기하게도 그 많은 겨울의 일들이 모두 기억난다. 어느정도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그 때, 그녀가 입었던 옷도 기억할 수 있을까.
담배를 사러, 오늘 처음으로 집 밖을 나서는데 아스팔트가 젖어 있다. 자고 있는 동안, 비가 내렸었다. 자는 동안 내린 비는, 항상 사람의 마음을 애틋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