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육교 위에서 본문
외로움이란 어떤 것일까?
난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다. 그런 이유로 국민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그 중 국민학교와 고등학교는 큰 길 너머에 있었고, 둘 다 육교를 이용해 길을 건어야 했다. 물론 다른 육교다.
국민학교 시절, 육교 위엔 참 많은 것들이 있었다. 두 손만 앞으로 내민채 고개를 푹 숙이고 엎드려 있던 어린 거지의 신발 상표는 페가수스였었다. 그 안에 석고를 부어, 여러 형태의 인형을 만드는 노란 고무틀을 파는 장사꾼도 있었고, 분명 속임수였겠지만, 가장 긴 고무줄을 골라내면 필통이나 색연필 같은 것들을 상품으로 주던 야바위 꾼들은 가끔씩 모습을 보였다. 종례시간에 선생님이 잊지 않고, 우리에게 주의를 주던 불량식품을 팔던 장사군도 있었다. 시큼한 맛을 내던 분홍색 분말가루는 빨대처럼 작은 원통 안에 들어 있어, 쭉쭉 빨아먹어야 했다. 노리끼리한 색깔의 투명한 설탕사탕은 물고기나 호랑이 모양으로 납작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육교 위에 펼쳐지는 건 아니다. 고작해야, 편도 2차로의 좁은 도로 위를 가로지르던 육교 였으니까. 야바위꾼들은 육교 위보다, 육교를 내려와서 비가 올 때면 꼭 물웅덩이가 생기던 교회 앞길에서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았고, 불량식품을 팔던 장사꾼들은, 학교 앞 길이 주근거지였다.
그런데, 내 기억은 이상하게도, 육교 아래, 차들이 지나다니던 차도를 내려다 보고 있는 내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떠들석한 국민학생들의 하교 행렬은 이미 끝났다. 육교 난간은 내게 너무 높아서, 난 발돋음을 하고 있다. 택시 위의 복주머니를 열 개 이상 보는 날은 행운이 찾아온다는 얘기를 알고 있었다. 녹색 복주머니다. 아직도 난 그 시절 왜 택시들이 지붕위에 복주머니 같은 걸 달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난 숫자를 센다. 하지만 복주머니를 단 택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게 쉽게 복주머니를 볼 수 있었다면, 행운 같은 게 찾아온다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태양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날이 저물 때 쯤에서야 난 비로서 열 개의 숫자를 다 셀 수 있다. 해가 지는 시각의 공기 냄새는 항상 똑같다. 잠깐 동안 눈을 감았다 떠도, 거리의 빛깔은 금새 낯설어진다. 복주머니 열 개를 셀 동안, 난 복주머니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열개를 세고 난 뒤에야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고 허둥지둥 육교 계단을 뛰어 내려 간다.
그 육교 위에서 복주머니를 세던 어린 나를 생각할 때면, 동시에 외로움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해가 지던 하늘의 싯푸런 빛깔 때문인지, 아님 복주머니 열 개를 다 세도 행운 같은 건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어쩜 너무 높았던 난간 때문일 수도 있고, 거지가 신고 있던 페가수스 신발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님, 아직 많이 남은 집으로 가는 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그 이유가 육교 때문이라고도 생각해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육교와 외로움은 분명 닮은 구석이 있다. 가만히 육교 위에 한참을 서 있어보라. 외롭지 않은가?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날 노래 나라 (0) | 1999.10.04 |
---|---|
크리스마스 캐롤 (0) | 1999.10.02 |
비오는 날의 좌석버스 (0) | 1999.09.25 |
친구의 차를 타고 (0) | 1999.09.25 |
내가 소설을 붙드는 것이다 (0) | 1999.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