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내가 소설을 붙드는 것이다 본문
한 때, 아니 내가 시를 포기하고 소설로 내 인생의 부저를 바꿨을 때 난 소설이 어떤 이야기의 양식이라고 생각했다. 난 신나게 사람들에게 얘기하기 시작했고, 몇 몇 사람들은 정말로 내 얘기를 흥미 있게 들어주었다.
하지만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렇다. 적어도 이야기라기보다 시와 가깝다는 것에 지금의 내 절망이 있다.
절망,
우리가 한 개의 문장을 컴퓨터 액정화면에 띄워 올릴 때, 그 문장이 자신이 생각했던 어떤 광휘를 가지고 있지 않을뿐더러, 참을 수 없으리 만치 진부하고 상투적인 어떤 것임을 보게될 때 , 밤을 꼬박 세우고도 원고지의 매수는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삭제된 문장들 덕에 매수가 줄었을 때, 문득, 어떠한 문장을 일순간 내게서 내 머리속에서 끄집어내는 게 힘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런 문장은 내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 앞으로도 영원히 내 문장은 지금처럼 지리멸렬할 뿐이고, 구원이란 없을 것 같을 때, 이를테면 난 절망한다. 내 자신에게 환멸을 느낀다. 내 자신을 환멸하는 내 마음이 지옥이 된다.
처음부터 소설을 잘 쓰는 신이 내려준 재능 같은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소설을 꼭 써야만 하는 운명의 굴레를 뒤집어 쓴 사람도 없다.
소설이 자신을 써 달라고 나를 붙잡는 것이 아니다. 내가 소설을 붙드는 것이다. 구차하게, 가지 말라고,
어, 이거 좀 곤란한데,
그래도 가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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