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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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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다리는 없다

물고기군 1999. 10. 10. 03:41
   모든 죽은 자는, 뒤에 하나의 다리를 남긴다.

   삼 년 전, 다른 도시에 간 적이 있다. 방엔 팔을 얹을 수 있는 낮은 창문이 있었는데, 일요일마다 달리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오랫동안 그 창을 통해 하늘을 보곤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빛의 비행기들을 바라봤다. 그 도시에선 흔한 풍경이었다. 언제라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파란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를 볼 수 있다. 비행기를 볼 수 없는 날은, 흐린 날 뿐이었다.
   비행기는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다른 높이로 날고 있었다. 세 대의 비행기를 한꺼번에 본 적도 있었다. 천천히 날던 비행기, 너무 멀어서겠지만, 마치 정지한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분명 조금씩 멀어지거나, 가까워지거나, 한 켠에서 다른 한 켠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모든 비행기들의 공통점은, 구름보다 더 새하얀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만일 그 꼬리가 없었다면, 그토록 쉽게 비행기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어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그리움이 저토록 길고 새하얀 꼬리를 만드는가?

   이상한 향수병에 시달리던 나는, 그 비행기들을 바라보면서 내 도시를 생각하고, 언젠가 내가 타게 될, 그래서 나를 데리고 이동시켜 줄 비행기를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시절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난 그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며칠 전, 난 또다시 하늘에서 비행기의 꼬리를 봤다. 수업이 진행중인 강의실에서였다. 비행기는 없고, 길고 하얀 꼬리만이 보였다. 꼬리는 길었고, 내 시야가 미치는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난 또 어디로 가고 싶은가? 삼 년 전, 내가 탔던 비행기는 나를 어디로 데리고 왔는가? 난 어디에 있는가?

   그 꼬리가 마치, 하늘에 걸린 '다리'같다고 생각했다.

   잠시 뒤, 내가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그 꼬리는 사라졌다. 하늘뿐이다. 파랗고, 시린 가을 하늘뿐이었다.

   모든 죽은 자는, 뒤에 하나의 다리를 남긴다. 하지만 다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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