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여름 본문
계절이 바뀌는 것은 멋지다. 나는 창문을 열고 고개를 조금 바깥으로 내밀어본다. 햇빛은 눈이 부시고, 나뭇잎은 짙은 초록빛깔을 띠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출렁인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반팔이거나 민소매 차림이다. 나는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진뜩한 땀을 손바닥으로 훔친다.
나는 내가 중학교 시절 보았던, '라밤바'라는 영화를 떠올린다. 항상 여름이면 그 영화를 떠올린 건 아니지만, 내가 지금 그 영화를 떠올린 건 여름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마 파랑이거나 초록인 세로 줄무늬 반팔 티를 입고 극장 매표소 앞에 줄을 서 있다. 극장은 충무로의 대한 극장이다. 친구와 나는 동작역에서 전철을 타서 충무로역에서 내렸다. 며칠 전부터 우리는 그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해 두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한 일주일 전부터 약속을 하고, 같이 보러갈 친구들을 물색한다. 무슨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극장을 갔다. 극장 안은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하다. 우리는 돈이 되는 대로 콜라를 산다. 병에 든 진짜 코카콜라다. 극장 안은 바깥에 비해 조금 어두침침하고 오래된 건물 냄새가 난다. 기둥의 칠은 벗겨지고, 화장실 냄새도 난다. 상관없다. 이전 회 영화가 끝날 때까지 붉은 색 비닐 커버가 씌어진 휴게실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한 손에는 콜라를, 그리고 다른 손에는 영화 팜플렛을 들고 감독의 이름이나 배우의 이름을 확인하고 영화의 줄거리를 마치 무슨 숙제를 위한 참고 자료를 읽듯이 한줄 한줄 꼼꼼이 읽으면서 말이다.
분명 영화 '라밤바'는 여름용 영화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건 여름방학시즌 영화였다. 영화 속 배경도 여름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없이 흘러나오는 영화음악도 여름용이다. 아주 빠르고, 시원하고, 비트가 강하다.
분명 세상에는 무슨무슨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여름용이라든지, 드라이브용이라든지 말이다. 이런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것이 무슨무슨용이라고 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 항상 시절에 대해서 불변하거나 항구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가치의 기준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나는 때로, '그것은 언제나 좋아, 언제 들어도 좋아.'라고 말하는 것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정말 좋은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만 좋은게 아닐까?
아무튼 내가 '라밤바'라는 영화를 본 것은 정말 오래전 일이다. 중학교 때였으니까 벌서 10년도 넘은 일이다. 어두운 극장을 나왔을 때, 환하게 내리쬐던 햇살과 여름 내음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멋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조금은 행복해진다. 스물 아홉 살, 여전히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아무 것도 해놓은 게 없지만, 어쩌면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괜찮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여름 시작.
나는 내가 중학교 시절 보았던, '라밤바'라는 영화를 떠올린다. 항상 여름이면 그 영화를 떠올린 건 아니지만, 내가 지금 그 영화를 떠올린 건 여름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마 파랑이거나 초록인 세로 줄무늬 반팔 티를 입고 극장 매표소 앞에 줄을 서 있다. 극장은 충무로의 대한 극장이다. 친구와 나는 동작역에서 전철을 타서 충무로역에서 내렸다. 며칠 전부터 우리는 그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해 두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한 일주일 전부터 약속을 하고, 같이 보러갈 친구들을 물색한다. 무슨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극장을 갔다. 극장 안은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하다. 우리는 돈이 되는 대로 콜라를 산다. 병에 든 진짜 코카콜라다. 극장 안은 바깥에 비해 조금 어두침침하고 오래된 건물 냄새가 난다. 기둥의 칠은 벗겨지고, 화장실 냄새도 난다. 상관없다. 이전 회 영화가 끝날 때까지 붉은 색 비닐 커버가 씌어진 휴게실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한 손에는 콜라를, 그리고 다른 손에는 영화 팜플렛을 들고 감독의 이름이나 배우의 이름을 확인하고 영화의 줄거리를 마치 무슨 숙제를 위한 참고 자료를 읽듯이 한줄 한줄 꼼꼼이 읽으면서 말이다.
분명 영화 '라밤바'는 여름용 영화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건 여름방학시즌 영화였다. 영화 속 배경도 여름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없이 흘러나오는 영화음악도 여름용이다. 아주 빠르고, 시원하고, 비트가 강하다.
분명 세상에는 무슨무슨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여름용이라든지, 드라이브용이라든지 말이다. 이런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것이 무슨무슨용이라고 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 항상 시절에 대해서 불변하거나 항구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가치의 기준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나는 때로, '그것은 언제나 좋아, 언제 들어도 좋아.'라고 말하는 것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정말 좋은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만 좋은게 아닐까?
아무튼 내가 '라밤바'라는 영화를 본 것은 정말 오래전 일이다. 중학교 때였으니까 벌서 10년도 넘은 일이다. 어두운 극장을 나왔을 때, 환하게 내리쬐던 햇살과 여름 내음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멋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조금은 행복해진다. 스물 아홉 살, 여전히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아무 것도 해놓은 게 없지만, 어쩌면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괜찮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여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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