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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사랑하기 좋은 날', 이건, 내가 서명을 한, 몇 안되는 한국영화중의 하나다. 그러니까, 플룻이니 카메라 워크니, 미장센이니 배우들의 연기니를 따지는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순전히 개인적으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영화다. (반대로 말하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좋은 영화'라는 판단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아마 이런 영화를 로맨틱 코미디라는 부류에 집어넣을 수 있을 텐데,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나, 뭐지, 장돈건이랑 김희선이 나왔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를 생각하면 이 영화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언급한 영화들보다, 장점이 더 많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냐면, 최민수(또 개인적으로는 최민수는 이런 영화에서 훨씬 더 ..
사랑은 언제나, 두 사람의 문제입니다. 이 말은, 두 사람일이니까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든지, 혹은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를테면,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없다는 일이겠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관계 속에 의미를 만드는 방식, 혹은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 안에 타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 1999년 여름의 메모
다시 한번 잠이란 건 정말 이상한 거다. 그게 어째서 전철을 탈 때만 그렇게 졸리운지 알 수가 없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내내, 집에 도착하기만 하면 곧장 침대로 뛰어드리라 맘먹었는데, 결국 이런 걸 만들었다. 얼마나, 이곳에 글을 채울지 알 수 없다. 내 모든 일이 그러한 것처럼, 곧 시들해지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만들어 놓고 나니 마음이 흐믓하다. 그러니까, 이건 일기장이다.
예전에는 사라지는 것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영원한 것, 또는 오래 지속되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누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일까. 낮은 것과 높은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하나의 단어, 하나의 사물, 하나의 현상에는 가치가 없다.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가리키는 손가락, 바로 나였다. 정말 사라지는 것에는, 그래서 사라진 것에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내가 좋아했던,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은 가치가 없다. 분명 그렇다. 과거의 어느 순간,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을 때는 분명 가치가 있었다. 이렇게 말해도 될까? 그러나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그것은 가치 없는 것,..
전철을 타고 학교를 가다가 깜박 존다. 완전히 잠에 빠진 건 아니고, 시간의 흐름이 기묘하게 뒤틀어진 느낌. 회기역에 이르러 억지로 몸을 일으켜 열차에서 빠져 나온다. 자고 싶다.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면, 이곳이 역사가 아닌 내 방이었으면 좋겠고, 내 눈앞에는 이제 막 세탁해서 약간 서늘한 느낌을 주는 하얀색 시트가 씌워진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손가락을 튕겨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다. 다른 대안. 어서 빨리 학교로 올라가서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과사무실 소파에 누워서 자야겠다.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가고 개찰구를 빠져나와 다시 계단을 내려가고 중소기업은행 앞 신호등에 다다르기도 전에 잠은 어느새 달아나 버린다. 아무렇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