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친구의 결혼식 본문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 왔다. 친구 중에 처음이다. 물론 친구가 아니라, 형제거나, 여자 동기거나, 또는 잘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을 참석한 경우는 있다. 매번 결혼식에 참석할 때마다, 그래서 신랑과 신부가 입장하고 주례사가 있고, 마침내 피로연장에서 어쭙잖은 식사를 할 때마다 나는 한없이 그 자리가 불편하고 지루하고 어색해진다. 딴은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사람을 내가 잘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딴은 잘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건 이런 느낌이다. 가령 나는 오늘 그 친구를 항상 개인적인 자리에서만 만나왔고, 단 한번도 그의 가족들이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는 걸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친구는 내가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니, 그건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 그럴 것이다. 나는 그 친구를 전혀 모른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불충분하다. 간단하게 말해서, 나는 결혼식이 싫다. 결혼이 싫은 게 아니라 결혼식이 싫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다. 결혼이란 것은 결혼식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결혼식을 뺀 결혼이라, 그건 동거가 아닌가?
물론 행정적으로 결혼신고를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아니다. 나는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은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당시에는 그게 결혼하고 싶은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알았다. 나는 그냥 같이 살고 싶은 것이다.) 결혼식이라는 행사가 싫은 게 아니라, 결혼식이 포함하고 있는 요소들이 싫다. 거기에는 마치 정기적금이나, 보험 같은 행정적인 요소가 있다. 거기에는 마치 승인이나 결재 같은 사무적인 요소가 있다. 거기에는 마치 선거나 공약 같은 정치적인 요소가 있다.
좌석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신문을 보던 여자의 모습을 아직도 난 잘 기억하고 있다. 커다란 창을 통해 비쳐 드는 아침 햇빛이 눈부시게 밝았다. 우리는 학교로 가고 있었다. 학교에 가서 꼭 오렌지 주스를 사먹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멋진 시간이었다. 내 생에 몇 안 되는 행복한 사건이었다. 분명히 나는 그 때 매일 아침 밝은 햇빛아래 신문을 보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 그녀는 내 옆에 없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가 그것을 지켜야만 했을까? 지킬 수가 있었을까? 이런 문제다. 지키는 게 옳았을까? 이런 문제다.
결혼식을 뺀 결혼이라, 그건 동거가 아닌가?
물론 행정적으로 결혼신고를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아니다. 나는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은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당시에는 그게 결혼하고 싶은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알았다. 나는 그냥 같이 살고 싶은 것이다.) 결혼식이라는 행사가 싫은 게 아니라, 결혼식이 포함하고 있는 요소들이 싫다. 거기에는 마치 정기적금이나, 보험 같은 행정적인 요소가 있다. 거기에는 마치 승인이나 결재 같은 사무적인 요소가 있다. 거기에는 마치 선거나 공약 같은 정치적인 요소가 있다.
좌석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신문을 보던 여자의 모습을 아직도 난 잘 기억하고 있다. 커다란 창을 통해 비쳐 드는 아침 햇빛이 눈부시게 밝았다. 우리는 학교로 가고 있었다. 학교에 가서 꼭 오렌지 주스를 사먹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멋진 시간이었다. 내 생에 몇 안 되는 행복한 사건이었다. 분명히 나는 그 때 매일 아침 밝은 햇빛아래 신문을 보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 그녀는 내 옆에 없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가 그것을 지켜야만 했을까? 지킬 수가 있었을까? 이런 문제다. 지키는 게 옳았을까? 이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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