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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군 2000. 7. 28. 00:39
한 편의 소설을 끝낼 때마다, 너무도 당연하게 나는 그 소설을 수십 차례 읽는다. 물건을 품평하듯이, 여러 각도에서 -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읽어본다든지, 전철의 출입구에 기대어, 모니터 화면으로 등등 - 점검해본다. 물론 그때마다, 내가 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느낌은 조금씩 달라진다. 꽤 괜찮은데 부터, 이렇게 형편없이 유치한 문장을 쓰고도 뻔뻔하게 사람들에게 보여줬구나 싶은 자괴감까지. 어떤 때는, 전혀 내가 쓴 소설처럼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느낌은 하나로 고정된다. 단 하나. '무언가 빠져있다.'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조금만 더 노력하고, 조금만 더 매달렸더라면 더 근사한 문장을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식의 아쉬움이 아니다. 아주 치명적이고, 본질적인 '무엇'이 빠져 있다.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다. '알맹이'의 문제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애초에 쓰려던 소설이 아닌 것이다.
사람마다 소설을 쓰는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문장을 자주 버리는 스타일이다. 버리는 문장은, 다른 파일에 저장한다. 그것이 00 파일이다. 나는 제목 뒤에 일련번호를 부쳐, 현재 작업하고 있는 소설을 저장한다. 그 중 00파일은 쓰레기통 파일, 01은 처음 작업분, 그 다음 02, 마지막은 대개 04 까지 파일은 늘어난다. 그렇게 만일 완성된 소설이 원고지 90매라면, 버린 문장은 원고지 150매 정도가 된다. 거진 한 배 반정도.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불릴만한 내 소설의 문제를, 결국에 소설이란 써가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며, 어차피 작가의 의도란 하나의 계기일 뿐 그것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게 소설 쓰기의 정답도 아니고, 처음부터 작가의 완벽한 의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식으로 정당화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한 말을 내가 전적으로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나의 소설에 느끼는 거북함은 전혀 다른 문제처럼 보인다. 그건 내 소설이 '가짜'라는 느낌이다. 나는 전달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러나 잘 전달할 수가 없다. 어떻게든 전달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그 노력이 애초에 내가 전달하려는 '무언가'를 훼손시킨다. 내가 전달하려던 애초의 의도나, 문장들은 00파일에 있다. 아니, 틀렸다. 나는 결국, 번듯한 '소설 만들기'에 열중했던 것이 아닌가. 가장 '소설스러운' 어떤 문장을 머리를 쥐어 짜가며 하나 하나, 마치 어린 시절 낱개로 분리되어 있던 조립식 완구를 설계도대로 짜 맞추듯이 만들어갔던 것이 아닌가.

오랜만에 다시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잘 되지 않는다. 무언가 나를 방해하고 있다. 예전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소설을 쓴다는 작업은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내일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종로의 극장 앞에 가볼 생각이다. 그러한 일이, 이제껏 한 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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