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731번 좌석버스 본문
아침나절에 비가 내리더니, 금방 또 하늘이 맑아졌다. 열 두시쯤 오후 타임을 다른 조교에게 부탁하고 학교를 내려왔다. 그 시간에는 또 하늘이 흐렸다. 아주 잠깐 하늘이 맑은 사이에, 바람이 시원했었나? 이런 기분이 들었다. 아, 정말 여름이구나. 다시 또 여름이구나. 거의 전철역까지 내려와서 문득 오늘은 좌석버스가 타고 싶어졌다. 하늘이 흐린 탓인지도 모르고, 좀 지쳐서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좌석버스에 편안하게 앉아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군대를 간 사이에 이사를 했다. 원래는 반포동에 살았었다. 그래서, 학교 앞에서 731번을 타면 전철 보다 조금 멀어도 집에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내려서 전철을 타고 두 정거장이나 더 가야한다. 오랫동안 731번을 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복학한 뒤로, 그게 98년도였으니까, 근 3년 동안이나 한번도 그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 전에는, 그래, 자주 그 버스를 이용했다. 전철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전철보다 더 걸어야 했는데도. 그 날은 봄비였을 거다. 막 겨울을 통과한 뒤. 그러니까, 그녀와 가을에 헤어져서 겨울을 보내고, 그 다음해 봄이었다. 왜 내가 전화를 했고, 그 때 전화로 우리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날, 우리는 만나기로 했고, 약속시간이 철저했던 그녀가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다. 약속장소로 길을 올라가면서 만났던 친구를 우연히도 다시 내려오면서 만났다. 친구 곁에는 같은 과의 그의 여자친구가 있었고, 당연하게도 둘 다 내가 아는 친구들이었다.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자는 걸, 웃으며 뿌리쳤다. '야, 남의 데이트에 내가 왜 끼여드냐?' 그리고 만화방에 들어가서 만화를 봤다. 나오니까 벌써 밖은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낮부터 잔뜩 흐리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맥주를 한 캔 샀나보다. 바로 731번 버스 정류장 앞의 가게 처마 밑에서 맥주를 마셨고,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고, 두 캔 째의 맥주를 손으로 우그러뜨렸다.
버스는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좌석버스를 타고 싶었던 내 마음은 점점 사그라졌다. 버스를 기다려 본 사람들은 안다. 지금껏 자신이 기다린 시간 때문에, 그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기다릴수록, 버스가 올 확률은 점점 더 높아진다. 적어도 그것은 진실이다. 돌아서야지 싶어도, 금방이라도 버스가 올까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맥주가 마시고 싶었고, 동시에 이제 그만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와 신호등 앞에 서자, 그 버스가 신호대기에 걸려 있었다. 이상하게도 하나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나는 전철을 탔다. 오후 내내 강남역 도서관에서 자료를 복사했다. 자료 대출 신청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어쩐 일인지 그곳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오래도록 흐린 하늘과 높은 빌딩과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비가 오고 있는 건지, 아닌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손을 내밀고 있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군대를 간 사이에 이사를 했다. 원래는 반포동에 살았었다. 그래서, 학교 앞에서 731번을 타면 전철 보다 조금 멀어도 집에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내려서 전철을 타고 두 정거장이나 더 가야한다. 오랫동안 731번을 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복학한 뒤로, 그게 98년도였으니까, 근 3년 동안이나 한번도 그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 전에는, 그래, 자주 그 버스를 이용했다. 전철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전철보다 더 걸어야 했는데도. 그 날은 봄비였을 거다. 막 겨울을 통과한 뒤. 그러니까, 그녀와 가을에 헤어져서 겨울을 보내고, 그 다음해 봄이었다. 왜 내가 전화를 했고, 그 때 전화로 우리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날, 우리는 만나기로 했고, 약속시간이 철저했던 그녀가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다. 약속장소로 길을 올라가면서 만났던 친구를 우연히도 다시 내려오면서 만났다. 친구 곁에는 같은 과의 그의 여자친구가 있었고, 당연하게도 둘 다 내가 아는 친구들이었다.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자는 걸, 웃으며 뿌리쳤다. '야, 남의 데이트에 내가 왜 끼여드냐?' 그리고 만화방에 들어가서 만화를 봤다. 나오니까 벌써 밖은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낮부터 잔뜩 흐리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맥주를 한 캔 샀나보다. 바로 731번 버스 정류장 앞의 가게 처마 밑에서 맥주를 마셨고,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고, 두 캔 째의 맥주를 손으로 우그러뜨렸다.
버스는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좌석버스를 타고 싶었던 내 마음은 점점 사그라졌다. 버스를 기다려 본 사람들은 안다. 지금껏 자신이 기다린 시간 때문에, 그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기다릴수록, 버스가 올 확률은 점점 더 높아진다. 적어도 그것은 진실이다. 돌아서야지 싶어도, 금방이라도 버스가 올까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맥주가 마시고 싶었고, 동시에 이제 그만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와 신호등 앞에 서자, 그 버스가 신호대기에 걸려 있었다. 이상하게도 하나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나는 전철을 탔다. 오후 내내 강남역 도서관에서 자료를 복사했다. 자료 대출 신청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어쩐 일인지 그곳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오래도록 흐린 하늘과 높은 빌딩과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비가 오고 있는 건지, 아닌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손을 내밀고 있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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