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홍권호, '쥐불놀이' 본문
동의할 수 없는 방식들, 투덜거림
권호의 글을 보면, 또 어쩔 수 없이 그의 전적을 떠올리게 된다. 마치, 감방에 갔다온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다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거기엔 분명 잘못이 있다. 왜냐하면, 감방에 가는 이유는 각자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권호가 뭔가 큰 죄를 지은 것같이 말한 셈이 되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권호만은 알 거라고 믿는다.
예전부터, '시'를 쓰다 소설을 쓰는 인간을 잘 신용하지 않았다. 어떤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다분히, 처음부터 소설을 써 왔던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같은 거리라. 또한, 경험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그러한 전적을 가진 인간들의 글은, 분명 어떤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쥐불놀이'는, 이전의 두 작품보다 ('실리콘 밸리...'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훨씬 더 어떤 시쟁이의 '스타일'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놀랍게도(언수형 버전으로), 난 소설을 읽는 내내 언수형의 '밤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게 단지 나 만의 생각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문장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라든지, 궁극적으로 소설이 보여주는 세계가, 너무나도 흡사하게 느껴졌다. 물론, 모니터 화면으로 듬성듬성 읽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는 게 조심스럽다.
지난 번 세미나에서 했던 언수 형의 말을 되풀이하면, 문장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가면, 결국 그 소설의 가치는 문장이 아니라, 문장이 드러내는 '사유'에 있다는 말. 물론, 여기서 사용한 '문장'이란 말을 엄밀히 구분할 필요는 있다. (결국 문장은 당연히 언제나 '사유'를 포함하고 있으니까) 좀 더 좁은 의미로 사용한 경우다. (근데, 좁은 의미의 '문장'이란 뭘까?) 자꾸만 말이 길어지고, 알맹이가 없어진다. 아주, 짧게 간단한 감상만 적으려 했는데, 분량만 길어지는 것 같아, 어서 끝내야겠다.
사실,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권호의 글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무슨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러워지지만, '쥐불놀이'가 보여주는 세계는,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쥐불놀이'의 문장들이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도, 난 지지할 수 없다. 난 아직도 '시'의 문장이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과, '소설'의 문장이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은 다르다고 믿는다. 소설이 단지, 서사가 있는 시거나, 좀 긴 시라고 믿지 않는다. 난 모르지만, 소설의 문장에는, 소설의 문장 나름의 '비밀'이 있다고 믿는다.
아직도, 난 권호가 정말로 무슨 할 말이 있었던 걸까, 의심할 수밖에 없다. 같은 글쟁이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대학을 졸업한 독자로서(뭐, 그렇다고 인문학적 지식이나 문학적 연습이 충분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쥐불놀이'가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말인가?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권호에게 별로 도움이 될 만한 말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하긴, 처음부터 권호에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말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어떤 숙제처럼 내가 권호의 글에서 느끼는 감정을,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지만, 말해야 할 것 같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부추겼다.
세미나에선, 제대로 권호의 글을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권호의 글을 보면, 또 어쩔 수 없이 그의 전적을 떠올리게 된다. 마치, 감방에 갔다온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다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거기엔 분명 잘못이 있다. 왜냐하면, 감방에 가는 이유는 각자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권호가 뭔가 큰 죄를 지은 것같이 말한 셈이 되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권호만은 알 거라고 믿는다.
예전부터, '시'를 쓰다 소설을 쓰는 인간을 잘 신용하지 않았다. 어떤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다분히, 처음부터 소설을 써 왔던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같은 거리라. 또한, 경험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그러한 전적을 가진 인간들의 글은, 분명 어떤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쥐불놀이'는, 이전의 두 작품보다 ('실리콘 밸리...'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훨씬 더 어떤 시쟁이의 '스타일'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놀랍게도(언수형 버전으로), 난 소설을 읽는 내내 언수형의 '밤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게 단지 나 만의 생각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문장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라든지, 궁극적으로 소설이 보여주는 세계가, 너무나도 흡사하게 느껴졌다. 물론, 모니터 화면으로 듬성듬성 읽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는 게 조심스럽다.
지난 번 세미나에서 했던 언수 형의 말을 되풀이하면, 문장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가면, 결국 그 소설의 가치는 문장이 아니라, 문장이 드러내는 '사유'에 있다는 말. 물론, 여기서 사용한 '문장'이란 말을 엄밀히 구분할 필요는 있다. (결국 문장은 당연히 언제나 '사유'를 포함하고 있으니까) 좀 더 좁은 의미로 사용한 경우다. (근데, 좁은 의미의 '문장'이란 뭘까?) 자꾸만 말이 길어지고, 알맹이가 없어진다. 아주, 짧게 간단한 감상만 적으려 했는데, 분량만 길어지는 것 같아, 어서 끝내야겠다.
사실,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권호의 글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무슨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러워지지만, '쥐불놀이'가 보여주는 세계는,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쥐불놀이'의 문장들이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도, 난 지지할 수 없다. 난 아직도 '시'의 문장이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과, '소설'의 문장이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은 다르다고 믿는다. 소설이 단지, 서사가 있는 시거나, 좀 긴 시라고 믿지 않는다. 난 모르지만, 소설의 문장에는, 소설의 문장 나름의 '비밀'이 있다고 믿는다.
아직도, 난 권호가 정말로 무슨 할 말이 있었던 걸까, 의심할 수밖에 없다. 같은 글쟁이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대학을 졸업한 독자로서(뭐, 그렇다고 인문학적 지식이나 문학적 연습이 충분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쥐불놀이'가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말인가?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권호에게 별로 도움이 될 만한 말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하긴, 처음부터 권호에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말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어떤 숙제처럼 내가 권호의 글에서 느끼는 감정을,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지만, 말해야 할 것 같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부추겼다.
세미나에선, 제대로 권호의 글을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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