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조셉 콘래드, "암흑의 핵심" 본문
조셉 콘래드, "암흑의 핵심", 이상옥, 민음사, 1998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7권에 속하는 책이다. 표지에 작가의 사진인지 초상화인지 모를 것이 그려져 있는데, 눈두덩이 쑥 들어가고 코가 크고 콧날이 오뚝한 게, 퍽 남성적으로 잘 생긴 얼굴이다. 코 아래부터 조명 탓인지도 모르지만, 검은 수염이 무성하다. 시선은 오른편 상단을 향하고 있는데, 노려보는 듯한 강한 눈빛은 아니고, 그저 지긋이 바라보는 눈빛이다. 마치 상갑판의 조타실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듯이.
이 책은 사실 꽤 오래 전에 구입한 책인데, 최근에야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되었다. 처음 도입부가 - 100년 전의 소설인 탓인지 조금 어설프다고 느껴졌지만 읽어나갈수록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힘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나 자신의 독서경향을 말하라 한다면, 아무래도 조금 여성적인 소설(특히 모디아노가 그렇다)을 좋아한다고 여겨지는데,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아주 남성적인 소설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문장들이 핵심으로 다가간다. 거침없이, 아주 관념적인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서술이든 묘사든 그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것은 '말로'라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기록하는 구어체 형식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을 구입하고 나서야, 이 소설이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 영화를 단 한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없다. '말로'가 아프리카의 콩고강을 거슬러 올라가 만나게 되는 '커츠'의 죽음 직전의 마지막 대사가, 정말 심장을 울린다.
<무서워라, 무서워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대사조차 굉장히 남성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무섭지만 괜찮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무서움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콘래드의 다른 작품 <로드 짐>을 읽고 싶었는데, 역시 절판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자, <로드 짐>을 읽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이겨냈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하게 증명하는 소설이었다. 고전은 역시 고전이다. 한번쯤 이렇게 거침없는 강렬한 문장의 소설을 쓰고 싶어진다.
원제는 , 때로 <어둠의 속>이라 번역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암흑의 심장>도 괜찮으리라 생각된다. 심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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