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상대방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 본문
예전부터 줄곧 생각해왔던 건데, 살아가면서 결코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상대방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상대방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 이란 어떤 사람인가? 이것은 단순히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그 말을 가로막거나, 또는 상대방이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자기 혼자 떠드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직접적으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그들은 굉장히 관용적이고 너그러운 사람처럼 보입니다. 상대방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듣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아주 사소한 말투와 눈빛, 그리고 태도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의견 따위는 정말 하잘 것 없는 것이구나.'라고 느끼게 합니다. 실로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상대방의 의견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않았고, 듣고 있지도 않습니다. 때로 그러한 능력을, 흔한 말로 '카리스마'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격언을 이용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처지)를 자각하게 하는 훌륭한 교사의 능력'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뭐라 표현하든,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그들은 대화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우위를 교묘하게 부각시키고 이용합니다. 때로는 지적 우위를, 때로는 경험적 우위를 확보합니다. 자신이 가진 조건과, 상대방이 가진 조건을 우열의 단순한 기준으로 비교하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한 인간이 가진 조건과, 그 인간 자체는 별개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 곰곰 생각해보면, 사실 그들의 의견이란 것도 대개는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눈에 확연히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그들이 속한 하나의 집단의 의견이거나, 그 집단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지식을 통해 얻어낸 제한된 시각의 편협한 의견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물론 올바른 목적으로 구성되고, 선의를 위해 피 흘리고 노력하는 집단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그런 그들이, 다른 사람의 고유한 의견을, 단지 그 사람이 자신보다 지식이 부족하거나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또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 자신이 속한 그것보다 어떠한 기준인지 알 수 없지만 훌륭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한다는 데 있습니다.
아니, 사실 더 큰 문제는 그들 자신이 그 사실을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자신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해놓고서, 그들이 말하지 않음을 탓합니다. 처음부터 상대방의 의견 따위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자신의 태도를 알지 못합니다. 상대방의 의견이 형편없다고 조롱하면서, 정작 자신이 말하는 의견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닌, 몇 권의 책에서 얻은 알량한 지식을 통한 것, 다른 사람의 것을 빌어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훌륭하고 논리적일지 모르나, 거기에는 항상 치명적인 사각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거창한 표어의 뒤편에 자신을 감추고, 이해할 수 없는 맹목적인 열정으로 자신을 무장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을 때, 당연히 남게될 본래의 자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다른 사람의 고유한 의견'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의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신뢰하지 않고,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한 개인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의 조건과 속한 집단을 상대하기 때문입니다. 또는 만일 그것이 아직도 존재한다면, 계급을 상대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 또한, 결국 한 개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상대방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을 무수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때로 '상대방이 잘 말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또한 그것은 그가 아직 '자신의 조건과 집단의 우위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도 허다합니다. 상대방을 잘 말할 수 있게 하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자신이 아직 상대방에게 말할 처지가 아니라 생각하고, 발언을 포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이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상황은 백팔십도 뒤바뀌게 됩니다.
최근에는 자주 과거 제 자신의 부끄러운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한 번 그 기억들이 저를 붙잡으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놓아주지 않습니다. 기분이 좋아질 만한 다른 생각들을 하려고 애써봐도, 오히려 그럴수록 상황은 나빠지기만 합니다. 그러면 저는 결국 포기하고 온 집 안을 뒤져, 알콜이 들어있기만 하면 무엇이든 찾아내 잔에 따라 홀짝홀짝 마시며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결국 그게 나인걸. 그 부끄러운 행위와 의식과 결과들이 나다. 그리고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현재의 내 자신 또한, 그 부끄러운 과거의 나와 다르지 않다. 나는 언제든 똑같은 짓을 저지를 인간인 거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아주 조금이라도 잠을 잘 수 있게 됩니다. 잠이 들기 전에, 아침에 깨어나면 다시 마주할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합니다. 제가 속한 집단과, 제가 살아온 환경과 처지를 떠나,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떠나, 당연히 남게 될 본래의 제 자신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가 - 바로 내 자신이 - 백팔십도 완전히 달라지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래도 조금은 나은 인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상대방이 잘 말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