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게으름 본문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요즘은 너무 바쁘다. 후배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나는 원래 바쁜 사람이 아닌데, 요즘은 왜 이리 바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지금껏 주욱 평균치 보다 '바쁘지 않게' 살아왔기 때문에, 더 바쁘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격 문제인데, 나는 원체 바쁘게 이일 저일 모두 다 신경 써가며 잘 해나가는 타입이 아니다. 부득이하게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경우에도, 나는 아무 거리낌없이 몇 가지 일을 제쳐놓는다.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거다. 그 일로 인해 물론 피해를 보기도 하고, 주위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면 정말 견딜 수 없어진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심하게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렇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나는 '게으른' 인간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그게 사실은 좀 다르지 않은가 라고 의문을 품기도 한다. 그러니까 남들이 나를 '게으른' 인간이라고 취급하는 데에 더 이상 화가 나지 않는단 말이다. 단순히 '게으름'이 너무 만성화되어서 아예 익숙해져버린 것일 수도 있지만, 내 식으로 말하면 대체 '성실한 나' 라는 존재가 상상이 되질 않아서이다. 그리고 '성실함'이란 그 자체로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내가 평생 알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간들 중, 수많은 성실한 인간들을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이 조금 더 게을렀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신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게으른 시간을 통해 되돌아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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