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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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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이 시간

물고기군 2000. 8. 23. 23:55
고등학교 시절, 문득 생각난 건데, 내가 제일 좋아했던 시간은 바로 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저녁 10시까지의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10시 반, 나는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한다. 부엌에 들어가 차가운 물 한잔을 벌컥 벌컥 들이마시고 방으로 들어간다. 하루가 끝났다. 별로 특별한 하루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어제나 아님 내일과 잘 구별할 수도 없는 매일 같은 하루지만 어쨌든 끝났다. 나는 불을 끄고, 오토 스톱이 되는 카세트 데크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어두운 방안에서 창 밖을 하릴없이 내다보며 담배 한 대를 피운다. 겨울이어도 환기를 위해 꼭 창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에 밤의 공기가 계절의 냄새를 방안에 가득 채운다. 이불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때로는 한 시간이 넘도록 잠이 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피곤해서 금방 잠이 들고 만다. 바로 이 시간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창 밖을 보며 친구에게 '비가 오네'라고 말했다. 조금 있다가 친구가 '비가 오네'라고 말했다. 또 한번의 여름을 보냈다. 하나의 계절을 보내는 것은, 언제나 비에 젖은 아스팔트처럼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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