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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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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방청소

물고기군 2001. 8. 8. 04:44

청소를 하는 중이다. 이제 방 청소는 마치 연례행사와도 같은 것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계절별이든, 분기별이든, 일 년에 네 번 정도는 밤을 새워 방을 청소한다. 그만큼, 청소할 거리가 있다.

나름대로 요령도 생기고, 체계도 생겨서, 맨 먼저 하는 일은 옷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순서대로, '책정리', '프린트물 정리' 등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매번 달라지는데, 이번 청소의 테마는 아무렇게 치워놓았던 옛날 컴퓨터와 그 관련부품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참고삼아 얘기하면 전번 청소의 테마는, '책상서랍정리'였다. 그래서 아직 책상 서랍은 양호한 편이다.

프린트물을 정리하면 지난 번 청소를 언제 했는지 알 수 있게 되는데, 가장 지난 프린트물이 들녘 창작집과 관련된 걸 보니, 3월 말 경이 아니었나 싶다. 창작집 표지니, 제본을 위해 여백을 맞춰보던 프린트물이 널려 있었다.

나는 청소를 하면서 굉장히 꾸물거리는 스타일인데, 그러니까, 밤을 새울 정도로 청소할 거리가 쌓여있는 건 아닌지도 모른다. 자, 청소를 해야지 싶으면, 일단 밤이 늦도록 기다린다. 그래서 막상 청소를 시작하는 건, 밤 12시 정도다. 가장 꾸물거리는 청소는, 역시 프린트물 정리인데, 지난 프린트물을 버릴 것과 버리지 않고 보관할 것을 구분하면서 하나 하나 살펴보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을 허비한다. 뭐, 딱히 버리지 말아야 하는 건데 행여 버리게 될까봐 걱정해서는 아니다. 이를테면, 나는 그 시간을 꽤 즐기는 것 같다.

프린트물 한 장 한 장은,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금은 버려야할 것에 구분되어서 내일 아침이면 당장 쓰레기봉투에 담길 프린트물 또한 그 때는, 내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프린트물에는, 그것을 필요로 했던 그 때의 '내'가 담겨 있기도 하다. 수업 발표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들녘 세미나 프린트물은 더욱 읽어볼 만 하다. 내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평한 것도 있고, 내 작품을 다른 사람이 평한 것도 있다. 그 평들을 이제 와서 읽어보면 어떤 것은 그 세부적인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데, 또 어떤 것들은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은 것들도 있다. 그 때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그 친구 말이 맞다. 또 내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평한 것을 보면 잘못 지적한 부분도 있고, 지적하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문제점으로 보이는 것도 있다. 물론 그 몇 개월 간 내가 문장을 보는 안목이 늘었다는 게 아니다. 단지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조금만 바뀌어도 작품 자체가 달라 보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여간 재밌다.

문득 지금에라도, 그 친구에게 지금 내가 느낀 것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 때는 영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굉장히 매력적인 문장 같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보니 이런 부분은 잘 안 어울리는 것 같다 등등. 그러나 물론 나는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대로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문장이란 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내 생각이 달라진 것처럼, 그 친구도 그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장을 쓰고 있으니까 말이다.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지만, 그냥 그런 걸 '성장'이라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이 저질렀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또는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강화하는게 아니라, 그것을 끌어안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청소를 마무리해야겠다. 벌써 새벽 다섯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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