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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직선에 관하여 본문

단상

직선에 관하여

물고기군 2001. 6. 10. 23:13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이미 어떤 하나의 일이 끝난 뒤에, 아니 바로 그것이 끝나자마자, 어쩌면 바로 끝났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을 때다. 가령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상대방에게 그런 식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얘기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다. 그렇다고 도대체 다시 전화를 걸어 그게 아니라 이거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미 그 일은 끝난 일이다. 그것은 봉합되었고, 굳어졌다. 나는 안절부절한다. 몹시 불쾌하고, 안타깝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누구나 알다시피, '이런 식' 아니라 이미 행한 '그런 식'이 오히려 내 자신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것이 되돌아 생각해서, 참 어리석고 부끄러운 행동이라 해도, 그것이 본래의 나다. 단순하게 말하면, '그런 식'의 내가 본래의 나고, '이런 식'의 내가 내가 지향하는 나다.

불완전성에 관한 얘기다. 불완전성이란 결국에 어떤 완전함을 전제하고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생각으로는, 나라는 존재는 결국 그 불완전성으로 인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그 불완전성이야말로 내가 가진 '매력'이고 '장점'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그것은 불완전함의 완전함이 아닌가? 나는 이렇게 불완전해, 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나의 완전함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제는 도리어 내가 내 자신에게 규정한 나의 불완전성이 나를 규정한다. 나는 나의 불완전성을 지키기 위해, 불완전성의 완전성을 위해 또 나를 제약하고 있다. '그런 식'이니 '이런 식'이니 하면서 말이다.

책에 밑줄을 그으면서 알게 된 사실 한 가지. 이건 어쩌면 순전히 개인적인 것일 수 있는데, 직선으로 밑줄을 긋는 것보다, 물결 치듯이, 끊임없이 잘게 위아래로 흔들면서 밑줄을 긋는 것이 더 똑바르다. 일직선으로 똑바르게 그으려고 하면 할 수록, 더 어긋나버린다. 아주 보기 흉해서, 나는 곧잘 지우개로 다시 지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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