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도서관 본문
오랜만에 아침에 도서관을 찾았다.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따져보면 거진 2년이 넘었다.
군대를 제대한 대개의 예비역들이 그러하듯이 한동안 어울리지도 않는 부지런을 떨어서, 내가 6월에 제대했으니까 그해 10월까지 4개월간, 친구의 차를 타고 아침마다 도서관을 찾았다. 성실했던 친구 탓에 거의 매일같이 빼놓지 않고 출근했었는데, 도착하는 시간은 여덟 시 반쯤으로, 우리는 마땅한 자리에 가방을 올려놓고 항상 커피를 마시러 바깥으로 나왔다. 그 해 나는 스물 여섯 살이었다. 그렇다해도 우리 둘 다 우리가 얼마나 늙었는지 과장했으며, 그 심정은 절실했었다. 그리고 이제 즐거운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인사성이 밝은 후배녀석이 도서관 앞 돌계단에 앉아 있던 우리를 향해 알은 체를 할 때면, 새삼 그들은 아직도 군대에 가지 않았고 우리보다 서너 살이나 어린 나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 손이 시렸고, 자연스럽게 목 끝까지 쟈켓의 단추를 채우게 된다. 문리대에서 도서관으로 내려가는 샛길, 하늘을 뒤덮은 나뭇잎들을 목을 치켜들고 올려다보며 걸었다. 그리고 문득, 오랜만에 쌀쌀한 아침에 도서관을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해 10월에 나는 서울을 떠나서 다음해 3월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리고 3년만에 복학을 하게 된다. 그 봄과 여름에 걸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적어도 그 이후에,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비하면 정말로 여러 가지 일들이다. 과대를 했고, 여자 친구와 헤어졌고, 불미스런 사건으로 학교를 그만둘 뻔 했고, 되지도 않는 삼각관계에 얽히기도 했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래된 친구 녀석 둘이 한꺼번에 잠적을 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있었고, 이해가 되는 일들도 있었다. 여름방학이 되어서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아마 그것은 세상에 대한 내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2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함께 차를 타고 다니던 친구 녀석은 이미 졸업학점을 채우고 학원을 차렸다. 그 뒤로 나는 아침에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커피를 뽑아서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았다. 추운 날씨 탓에 커피는 금새 식어버렸다. 담배 한 대를 물고, 다시 나뭇잎을 올려다보았다.
말이란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다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단 한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 후회란 사치에 불과한 것이다. 공중전화부스가 보이고, 여자가 종종 먹을 것을 사와 함께 나눠먹던 숲 속 벤치가 보였다. 스물 여섯 살에서, 스물 여덟까지. 나는 분명 조금은 철이 든 것 같다. 이제는 술을 먹고 헤어진 여자에게 전화를 하지 않으니 말이다. 조금은 흐뭇해진다.
이제 곧 스물 아홉 살이 되는데, 그다지 두렵지는 않다. 희망은 언제나 무엇에 대한 희망인 줄 알았는데, 그냥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뭇잎은 노랗고 붉었고, 곧 질 것이었다. 수요일 날 재혁이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할 생각이다. 나는 노란 은행잎을 좋아한다. 특히 비가 온 다음날에 까만 아스팔트에 찰싹 달라붙은 그 노란 빛깔을 좋아한다.
군대를 제대한 대개의 예비역들이 그러하듯이 한동안 어울리지도 않는 부지런을 떨어서, 내가 6월에 제대했으니까 그해 10월까지 4개월간, 친구의 차를 타고 아침마다 도서관을 찾았다. 성실했던 친구 탓에 거의 매일같이 빼놓지 않고 출근했었는데, 도착하는 시간은 여덟 시 반쯤으로, 우리는 마땅한 자리에 가방을 올려놓고 항상 커피를 마시러 바깥으로 나왔다. 그 해 나는 스물 여섯 살이었다. 그렇다해도 우리 둘 다 우리가 얼마나 늙었는지 과장했으며, 그 심정은 절실했었다. 그리고 이제 즐거운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인사성이 밝은 후배녀석이 도서관 앞 돌계단에 앉아 있던 우리를 향해 알은 체를 할 때면, 새삼 그들은 아직도 군대에 가지 않았고 우리보다 서너 살이나 어린 나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 손이 시렸고, 자연스럽게 목 끝까지 쟈켓의 단추를 채우게 된다. 문리대에서 도서관으로 내려가는 샛길, 하늘을 뒤덮은 나뭇잎들을 목을 치켜들고 올려다보며 걸었다. 그리고 문득, 오랜만에 쌀쌀한 아침에 도서관을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해 10월에 나는 서울을 떠나서 다음해 3월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리고 3년만에 복학을 하게 된다. 그 봄과 여름에 걸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적어도 그 이후에,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비하면 정말로 여러 가지 일들이다. 과대를 했고, 여자 친구와 헤어졌고, 불미스런 사건으로 학교를 그만둘 뻔 했고, 되지도 않는 삼각관계에 얽히기도 했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래된 친구 녀석 둘이 한꺼번에 잠적을 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있었고, 이해가 되는 일들도 있었다. 여름방학이 되어서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아마 그것은 세상에 대한 내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2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함께 차를 타고 다니던 친구 녀석은 이미 졸업학점을 채우고 학원을 차렸다. 그 뒤로 나는 아침에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커피를 뽑아서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았다. 추운 날씨 탓에 커피는 금새 식어버렸다. 담배 한 대를 물고, 다시 나뭇잎을 올려다보았다.
말이란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다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단 한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 후회란 사치에 불과한 것이다. 공중전화부스가 보이고, 여자가 종종 먹을 것을 사와 함께 나눠먹던 숲 속 벤치가 보였다. 스물 여섯 살에서, 스물 여덟까지. 나는 분명 조금은 철이 든 것 같다. 이제는 술을 먹고 헤어진 여자에게 전화를 하지 않으니 말이다. 조금은 흐뭇해진다.
이제 곧 스물 아홉 살이 되는데, 그다지 두렵지는 않다. 희망은 언제나 무엇에 대한 희망인 줄 알았는데, 그냥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뭇잎은 노랗고 붉었고, 곧 질 것이었다. 수요일 날 재혁이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할 생각이다. 나는 노란 은행잎을 좋아한다. 특히 비가 온 다음날에 까만 아스팔트에 찰싹 달라붙은 그 노란 빛깔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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