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109 - 연기하는 꿈 본문
며칠 전에 내가 연기자가 된 꿈을 꾸었다. 아니 연기자가 되었다기 보다, ‘연기’를 하는 꿈을 꾸었다는 게 맞을 거다. 아무리 꿈속이라 해도, 당연한 얘기지만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조차도 부끄러운 ‘연기 비슷한’ 어떤 짓을 하고 있었다. 왜 내가 연기자가 된 거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사람들이 내게 뭐라고 욕을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그건 굉장히 지독하고 불쾌한 꿈이었는데, 현실로 치자면 내가 외국의 호텔 프론트에서 더듬더듬 영어를 하는 상황과 비슷하겠다. (실제로 그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안다. 항상 그렇듯이 상대방은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내게 어떤 것을 요구했는데, 나는 도대체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 가장 나빴던 건 내가 그 자리를 도망쳤다는 거다. 호텔은 어디에나 있는 걸, 하면서)
어쨌든 연기자란 대단한 거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일종의 사이코 드라마 같은 건 할 수 있지 않을까? 병원에서 하는 치료용의 연기. 역할극. 아마 내가 맡은 역할은 외국인에 대해 끔찍한 공포를 가진 사람쯤 되지 않을까? 이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자신감을 가져,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최근에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라는 데, 이 연극에 나는 너무 서툴다. 객석으로 빨리 퇴장하고 싶은 걸. 그래도 보는 건 좋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운이 좋다면 야한 장면을 볼 수도 있으니까. 뒤집혀진 치마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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