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74 본문
술을 한잔 했습니다. 같이 있던 여자를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고, 조금 밤거리를 걸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그렇게 그냥 걸어본 것이 말이죠. 그래요, 예전에는 참 많이도, 술을 먹고 밤거리를 걸었더랬죠. 옆에 누군가 있는 경우도 있고, 저 혼자 괜히 그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거나, 또는 떼를 쓰듯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그리로 갈 테니 나오라고, 그렇게 가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가슴 설렙니다. 오늘은 갈 데가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여러 가지 것들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또...
슬픔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래요, 저는 조금 슬퍼졌습니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바랐던 것입니다. 저의 바람대로 저는 슬퍼졌고, 그래서 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걷는 내내,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것을 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그것을 할 수 없음에도, 여전히 그것을 바란다는 것이. 부질없음이, 어리석음이, 약함이, 좋았습니다. 저는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저는 loser, 패자입니다. 그 사실이 저를 슬프게 하고, 기쁘게 합니다. 오늘은 기분 좋은 꿈을 꾸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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