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5 - 옥수역 본문
오늘은 두 가지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잘 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1. 얼마만 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오랜만에 제가 오랫동안 몸 담고 있었던, 들녘 소설 창작 합평회에 참석했었습니다. 예전에 같이 합평회를 했던 멤버들이 다 함께 모인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참여한 합평회도 아니었지만 - 오늘 합평회는 네 명이서 둘러앉아 했더랍니다 - 충분히 옛날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어준 자리였습니다. 여전히 그런 자리에서, 호들갑스럽게 말이 많은 나였기에, 좀 지겨운 감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전혀 신선하지 않았던 겁니다. 누가 자기 자신이 말하는 방식이나 내용을 신선하다 느낄 수 있겠습니까? 흠. 하여간 저는 이런 걸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옛친구를 만나는 것, 내게 익숙한 자리가 여전히 내가 모르는 새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 물론 그건 또 그 나름대로 달라진 점이 있을 테지만, 무언들 어떻게 습니까? 인생은 길고, 지금껏 살아온 생을 통해서 내가 얻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언제까지나 기억할 수 있다면, 인간의 삶이란 것도 그 자체로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합평회가 끝난 술자리에서 했던 얘기지만, 예전에 이런 광고카피가 있었습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우승을 차지하고 성공했을 때, 나는 필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실패했을 때, 그때도 나는 필드에 있었습니다." (분명 골프웨어나 장비에 관한 선전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내가 필드에 있다는 사실이 아닌가? 내가 그곳에서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라고 말입니다. 때로 인생이란, 누군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곳에 있기 위해서도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는 법입니다. 가혹한 것입니다.
2. 옥수역이 달라졌습니다. 비록 짧은 구간이지만, 철로가 새로 놓여졌습니다. 그러니까, 옥수역의 3호선 구간은 그대로인데, 국철 구간의 철로가 정확하게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 아마 좀 더 반듯하게 만든 것 같은데 - 이전의 철로가 놓였던 위치에서 좀 더 멀어졌습니다. 그에 따라 승강대도 옮겨졌습니다. 승강대를 오르내리는 계단도 훨씬 넓어졌고, 승강대 자체도 넓어졌습니다. 지붕도 생겼습니다. 좀 더 규모가 커졌다고 할까요? 열차 안내판도 신식으로 바뀌었고, 안내 방송의 멘트도 세련되게 바뀌었습니다. 이전의 철로는 들여내어지고, 철로를 따라 있던 승강대도 뜯어내어졌습니다. 1993년부터니까, 저는 근 8년 동안(중간에 군대를 갔다온 3년을 제외하더라도 5년 동안), 지금은 사라진 승강대를 이용했었습니다. 그 승강대는 폭이 좁았고 지붕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세련된 쓰레기통 대신, 녹이 슨 드럼통이 놓여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했고, 날씨가 추운 겨울이면 열차가 올 때까지 하얀 입김을 연신 뿜어내며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열차를 기다리면서 저는 승강대 빨간 벽돌 울타리 위에 쓰여진 전화번호들과 문장들을 읽고는 했습니다. 01X-XXX-XXXX, 강남 킹카, 아무나 전화하쇼, 뭐 이런 종류의 말들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소설을 읽거나, 멍하니 강을 바라보거나, 햇빛이 좋은 날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쳐들곤 했습니다. 물론 예전의 그 승강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 무엇보다 오르내리는 계단이나 승강대의 폭이 좁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대에는 몇 발짝 움직이는 것도 힘들 정도로 사람들로 밀렸다든지 하는 문제 등 - 이 해결되었다는 점에서는, 지금의 승강대를 발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불평을 늘어놓을 마음은 없습니다. 그것이 이 세계가 추구하는 방향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바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세계가 분명히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그렇다해도 제가 다시는, 예전의 그 승강대에 설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이 쓸쓸해집니다. 그 쓸쓸함은, 때로 너무 강렬해서, 제가 살아온 삶과 앞으로 살아갈 삶 전체를 뒤흔들고는 합니다.
1. 얼마만 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오랜만에 제가 오랫동안 몸 담고 있었던, 들녘 소설 창작 합평회에 참석했었습니다. 예전에 같이 합평회를 했던 멤버들이 다 함께 모인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참여한 합평회도 아니었지만 - 오늘 합평회는 네 명이서 둘러앉아 했더랍니다 - 충분히 옛날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어준 자리였습니다. 여전히 그런 자리에서, 호들갑스럽게 말이 많은 나였기에, 좀 지겨운 감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전혀 신선하지 않았던 겁니다. 누가 자기 자신이 말하는 방식이나 내용을 신선하다 느낄 수 있겠습니까? 흠. 하여간 저는 이런 걸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옛친구를 만나는 것, 내게 익숙한 자리가 여전히 내가 모르는 새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 물론 그건 또 그 나름대로 달라진 점이 있을 테지만, 무언들 어떻게 습니까? 인생은 길고, 지금껏 살아온 생을 통해서 내가 얻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언제까지나 기억할 수 있다면, 인간의 삶이란 것도 그 자체로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합평회가 끝난 술자리에서 했던 얘기지만, 예전에 이런 광고카피가 있었습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우승을 차지하고 성공했을 때, 나는 필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실패했을 때, 그때도 나는 필드에 있었습니다." (분명 골프웨어나 장비에 관한 선전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내가 필드에 있다는 사실이 아닌가? 내가 그곳에서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라고 말입니다. 때로 인생이란, 누군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곳에 있기 위해서도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는 법입니다. 가혹한 것입니다.
2. 옥수역이 달라졌습니다. 비록 짧은 구간이지만, 철로가 새로 놓여졌습니다. 그러니까, 옥수역의 3호선 구간은 그대로인데, 국철 구간의 철로가 정확하게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 아마 좀 더 반듯하게 만든 것 같은데 - 이전의 철로가 놓였던 위치에서 좀 더 멀어졌습니다. 그에 따라 승강대도 옮겨졌습니다. 승강대를 오르내리는 계단도 훨씬 넓어졌고, 승강대 자체도 넓어졌습니다. 지붕도 생겼습니다. 좀 더 규모가 커졌다고 할까요? 열차 안내판도 신식으로 바뀌었고, 안내 방송의 멘트도 세련되게 바뀌었습니다. 이전의 철로는 들여내어지고, 철로를 따라 있던 승강대도 뜯어내어졌습니다. 1993년부터니까, 저는 근 8년 동안(중간에 군대를 갔다온 3년을 제외하더라도 5년 동안), 지금은 사라진 승강대를 이용했었습니다. 그 승강대는 폭이 좁았고 지붕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세련된 쓰레기통 대신, 녹이 슨 드럼통이 놓여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했고, 날씨가 추운 겨울이면 열차가 올 때까지 하얀 입김을 연신 뿜어내며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열차를 기다리면서 저는 승강대 빨간 벽돌 울타리 위에 쓰여진 전화번호들과 문장들을 읽고는 했습니다. 01X-XXX-XXXX, 강남 킹카, 아무나 전화하쇼, 뭐 이런 종류의 말들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소설을 읽거나, 멍하니 강을 바라보거나, 햇빛이 좋은 날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쳐들곤 했습니다. 물론 예전의 그 승강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 무엇보다 오르내리는 계단이나 승강대의 폭이 좁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대에는 몇 발짝 움직이는 것도 힘들 정도로 사람들로 밀렸다든지 하는 문제 등 - 이 해결되었다는 점에서는, 지금의 승강대를 발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불평을 늘어놓을 마음은 없습니다. 그것이 이 세계가 추구하는 방향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바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세계가 분명히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그렇다해도 제가 다시는, 예전의 그 승강대에 설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이 쓸쓸해집니다. 그 쓸쓸함은, 때로 너무 강렬해서, 제가 살아온 삶과 앞으로 살아갈 삶 전체를 뒤흔들고는 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