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좋은날

'사랑하기 좋은 날', 이건, 내가 서명을 한, 몇 안되는 한국영화중의 하나다. 그러니까, 플룻이니 카메라 워크니, 미장센이니 배우들의 연기니를 따지는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순전히 개인적으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영화다. (반대로 말하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좋은 영화'라는 판단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아마 이런 영화를 로맨틱 코미디라는 부류에 집어넣을 수 있을 텐데,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나, 뭐지, 장돈건이랑 김희선이 나왔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를 생각하면 이 영화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언급한 영화들보다, 장점이 더 많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냐면, 최민수(또 개인적으로는 최민수는 이런 영화에서 훨씬 더 봐줄만한지 않나라고 생각한다.)가 한강 유람선 선착장에서 지수원에게 (지금식으로 얘기하면) 일종의 준비된 대사를 하는 장면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자신이 혼자서 끙끙 앓는 사랑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유머시리즈'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만일 누군가 그녀에게 자신이 만든 유머 시리즈를 들려준다면, 그리고 그녀가 웃는다면, 그건 자신이 그녀를 즐겁게 해준 게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요즘도 유머시리즈를 듣게 되면, 우습다는 생각 이전에 아, 이 유머시리즈를 만든 사람도 말 못할 사랑을 하고 있구나 라고 슬퍼진답니다' 카메라는 먼데를 바라보는 최민수의 눈빛과 그를 쳐다보는 지수원의 눈빛을 투샷으로 잡는다.

대사 자체가 신선하다거나 화면이 예쁘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고등학교 시절, 나도 저러한 대사들을 수 십가지 정도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여자를 만나면, 나도 노을이 지는 한강 둔치에서 괜히 먼데를 바라보면서 저런 대사를 쳐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모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그렇듯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사랑은 달콤한 것', 그래서 해볼 만한 것. 이런 얘기가 아닐까? 그래서 인생은 대체로 행복한 그 무엇이고, 살아볼만한 것이다, 라는 얘기.

나는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또 추천하고 싶은 영화는 '사랑의 블랙홀'이다. 빌 레이와 앤디 맥도웰이 나온다. 한때 나는 앤디 맥도웰을 정말 좋아했다.) 이런 영화를 보면, 바보같이 행복해진다. 행복해지라고 만든 영화를 보고, 정말로 행복해진다는게 정말 바보같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