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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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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공일오비를 추억하며

물고기군 2001. 10. 22. 01:35
'공일오비'를 말하는 것은 내게는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하긴 무엇이든, 우리가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는 일일 테지만, 특별히 더 그러한 것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공일오비'의 첫앨범이 발매된 건 89년이거나 90년일 것이다. 확인해보면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있겠지만, 정확한 연도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공일오비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게된 건 그들의 2집을 통해서였다. 1991년 발매. 그 즈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예전에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좋아했던 교회의 어느 여자와 관련된 몇 가지 특별한 기억이 있다. 놀랍게도 나는 아직 그 여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십 년 전의 내가 사귀지도 않았던 여자의 이름을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민혜기'였다. '민혜기', 참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여간 그 동네 친구 녀석은 그녀를 사귀는 데 내게 도움을 청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여전히 나는 그런 호들갑스러운 일들을 좋아했으므로, 좋아라 두 발 벗고 나섰다. 그리고 몇 가지 일들, 그녀의 아파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꽃을 준비하거나, 시를 써서 전해주거나(내가 대신 썼다), 이러쿵 저러쿵 고등학생다운 호들갑을 떨다가 마침내 당시로서는 꽤 비쌌으리라 예상되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어느 가스펠 가수의 콘서트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 콘서트에 나도 끼어 갔다는 것이다. 필시 지독히도 숫기가 없던 친구가 한사코 같이 가야한다고 우겼으리라 짐작하는데, 그렇다고 같이 따라간 나도 참 한심한 놈이다.
하여간. 결과는 잘 안됐다. 잘 될 리가 없었다. 밤이 으슥한 시간에 친구와 동네 놀이터의 놀이기구에 앉아 새우깡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아마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공일오비'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것이. 친구는 워크맨을 가지고 있었고, 이어폰을 한 짝씩 나눠 끼고 우리는 공일오비 2집에 수록되어 있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노래를 들었다. 우리가 술을 마셨다고 해서 그 날의 분위기가 사뭇 비장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우리는 나름대로 즐거웠다. 그게 젊었을 시절의 연애의 장점이다. 비록 내 연애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녀의 소식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분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그 친구와 함께 한 번 봤던 것 같은데, 그녀가 대학엘 들어갔는지, 아니면 나처럼 재수를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고속터미널의 굉장히 허름한 지하의 호프집에서 양념통닭을 안주로 맥주를 마셨던 건 확실히 기억한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 '다음세상을 기약하며', '5월 12일', 공일오비의 세 번째 앨범, 1992년. 그 해 나는 재수생이었다. 지금은 연락을 끊은 친구와 보냈던 종합반 학원 옥상의 국기게양대. 그 친구를 통해 나는 홍대를 알게 되었고, 몇 명의 여자를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선물한 녹음 테이프에는 항상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가 들어 있었다.
"누군가가 그러더군 여자에겐 현재만이 중요하다고 네가 선물한 테입을 들으며 네가 보낸 편지들을 읽으며 지나버린 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를 보면 넌 아마 비웃겠지"
그녀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자주 갔던 락카페의 이름은 기억한다. '아이비리그.' 최근에 홍대에 갈 일이 있어, 그곳에 가보니 이름은 여전히 '아이비리그'이던데, 요즘에도 여전히 '락카페'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1993년, 나는 대학에 들어갔다.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 -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불렀던 노래. 후에 '들녘' 첫 합평회 때,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지 않았던 선배의 요청으로, 다시 불렀다. 장소는 지금은 없어진 학교 앞 '불새다방'. 생각해보면 쪽팔리는 일이다.
공일오비 1집의 '텅 빈 거리에서'는, 그 시절 내 노래방 십팔번이었다. 이 노래는 그 뒤로 몇 년이 지나서, 그러니까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도 간만에 동기끼리 다시 노래방엘 가면 곧잘 나 대신 동기녀석이 번호를 눌러놓고 내게 마이크를 넘겨 준 노래이기도 하다. '텅 빈 거리에서' 후렴구의 원래 가사였던 '동전 두 개 뿐'은 그 뒤로 농담처럼 '동전 세 개', '동전 네 개'가 되었다.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공일오비 5집 수록). 군대 시절, 이 노래는 나를 잘 따르던 후임병 녀석(이 친구 이름도 아직 기억하고 있다)이 불렀던 노래다. 그 때 나는 상병이었다. 가끔 멈춰 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나 해지는 하늘 빛깔이나, 구름 그림자를 자주 오랫동안 바라보던 시절이었다.
그 즈음에 대대 상황실 앞에 공중전화가 설치되었고, 일과가 끝나면 츄리닝으로 갈아입은 대대원들이 삼삼오오 전화를 걸기 위해 그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 후임병 녀석과 함께 자주 같이 그 앞에 서 만났던 걸로 기억한다. 담배를 나눠 피고, 군에 들어오기 전의 생활이나, 여자 얘기를 했다. 주위는 금방 어두워져서, 녀석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지고, 담배 불빛은 더욱 새빨개졌다.
철책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을 때 녀석은 이미 대대를 떠나 있었다. (그는 다른 중대에 소속되어 있던 녀석이라 철책에서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소문으로는 무슨 병인가로 후송을 갔다고 했는데, 내가 제대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녀석의 이름은 '김경수'였다.

'5월 12일'이라는 노래에 관한 기억은 확실하지 않다. 사연은 이렇다. 노래 제목과 똑같은 날이 분명 어느 여자와 기념할 만한 날이었는데, 나는 그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헤어지고 나서 전화통화를 통해 그녀가 내게 그 날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나는 그냥 그런가 하고 새삼스러워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여자가 어떤 여자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심증은 있는데, 확신할 수 없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내가 굉장히 많은 여자를 알았던 걸로 착각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내가 기억력이 나쁜 것일 뿐이다.

공일오비가 활동했던 기간은 1989년부터 1996년이었다. 그 기간은 정확하게 나의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의 그 시끌벅적한 날들과 일치한다. 그 시끌벅적함은 내게만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런 시절을 거쳤으며, 거치고 있고, 거칠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인생은 공평하다.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도, 혹은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마치 풍경처럼 그것은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잘 모르는 채로 지나친 것뿐이다. 그리고 어느 날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거나, 잠자리에 누워도 오랫동안 잠이 오지 않을 때, '그것', '그 시끌벅적한 시절'이 내게 선물처럼 주어졌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사라졌다는 것도. 확실한 건, 그러한 시절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똑같은 일이 내게 다시 한 번 반복된다 해도, 그 때 내가 느꼈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이 '시절'이 가진 완전함이다.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은 어리석다. 그걸로 됐다. 그걸로 완전했다.

최근 공일오비라는 이름이 다시금 티브이 화면에 등장했다. '이가희'라는 여자가수의 프로듀스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나는 티브이에서 그것을 봤다. 마치 유령을 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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