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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VDT 증후군

물고기군 2001. 8. 27. 02:50

어깨가 결린다. 평생 어깨 같은 건 결려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처음 경험하는 통증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직 느껴보지 못한 통증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완성된 소설을 수정하는 작업을, 나는, 즐거운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불완전했던 부분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면서, 완전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어느 정도는 성과가 있지만, 애초에 도저히 수정이 안 되는 부분도 있다. 어떻게 손을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결함이다. 그런 건 어쩔 수 없다. 다음 소설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이빨을 꽉 깨물고, 반성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그것은 즐거운 작업이다. 전혀 고통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은 심하다. 이건 수정이 아니라, 개정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래서 어깨가 결린다. 다 내팽개쳐 버리고 싶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슬그머니, 아, 다른 소설을 써야겠어 하고 책상 서랍 깊숙한 곳이나 어디 신발장에라도 감춰두고 싶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단순히 지겹거나 힘들다는 게 아니다. 붙들고 있으면 있을수록, 이런 소설을 쓴 내 자신이 싫어진다. 자기 자신을 동정하게 된다. 부끄러워진다. 즉, 자신감을 잃고 절망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 주위 사람 모두에게로부터, 이건 완전 실패네, 라는 소리를 듣게 만드는 완전 꽝인 소설일지라도,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배움은, 분명, 누군가의 표현대로 구역질이 나도록 자신의 문장을 반복해서 읽고, 끊임없이 수정을 가하며, 아주 조금이라도 구제해나가는 노력 속에 더 커진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소설을 쓰는 건 즐거운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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