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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재

잠.. 본문

단상

잠..

물고기군 2001. 2. 23. 05:02
전철을 타고 학교를 가다가 깜박 존다. 완전히 잠에 빠진 건 아니고, 시간의 흐름이 기묘하게 뒤틀어진 느낌. 회기역에 이르러 억지로 몸을 일으켜 열차에서 빠져 나온다. 자고 싶다.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면, 이곳이 역사가 아닌 내 방이었으면 좋겠고, 내 눈앞에는 이제 막 세탁해서 약간 서늘한 느낌을 주는 하얀색 시트가 씌워진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손가락을 튕겨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다. 다른 대안. 어서 빨리 학교로 올라가서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과사무실 소파에 누워서 자야겠다.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가고 개찰구를 빠져나와 다시 계단을 내려가고 중소기업은행 앞 신호등에 다다르기도 전에 잠은 어느새 달아나 버린다. 아무렇지도 않다. 처음부터 잠 같은 건 자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어째서일까? 분명 방금 전만 해도 나는 잠 이외에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작 몇 분이 흘렀을 뿐인데도, 잠 같은 건 아무러면 어떠냐 싶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확실히 사람들의 말이 옳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한다. 시간이 흐르면, 마술처럼 어떤 감정들이 사라진다.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어 죽을 것 같은 강렬한 감정. 어떤 대안도 없는, 그래서 오히려 편안한 무덤 같은 감정들도 사라진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모든 마술이 그러한 것처럼, 시간의 마술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단지 우리 눈앞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여러 가지 것들을 변화시키고 사라지게 하지만, 어떤 것도 완전히 이 세계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다. 어딘가에 분명히 그것은 있다. 사라진 잠이 피곤이라는 형태로 우리 몸을 잠식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것은 언젠가 확실히 우리를 붙잡을 것이다. 형태가 바뀌고 그 방식이 바뀌어서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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