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재
물고기통신 77 - 내가 뭐해줄까요? 본문
어떤 말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 그것은 때로는 굉장히 오랜 시간일 수 있는데, 새삼 그 말의 의미를 절감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 말이 특별히 어렵고 의미심장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명확하고, 판에 박은 말일 수도, 또 굉장히 유치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흔한 말이고, 말해놓고 나면, 그게 뭐야, 싶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이 되면, 새삼 ‘절감’하게 되는 겁니다. 그 중에 하나는, 작년 가을 방영되었던 티브이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대사입니다.
‘내가 뭐해줄까요?’
이것은 극중 여자 주인공이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자(좋아해도 되요?), 남자가 그 대답으로 한 말입니다. 물론 그때도 참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멋진 대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말을 두고, 여러 설명을 붙일 수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꽤 긴 정의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란 말이야...운운. 하지만 제 자신이 이 말을 새삼 절감한 건, 실제로 제가 이 말을 무의식중에 쓰게 된 때입니다.
내가 뭐해줄까?
그때 상대방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그 대답을 여기서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건, 그 순간 저는, 이 말이 어떤 말인지 절실히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제가 왜 그렇게 말하게 되었는지, 제가 무엇을 바라는지, 또 그렇게 해서 제 자신이 지금껏 어떤 인간이었는지도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가 알게 된 사실, 새삼 절감한 삶의 진실을 여기에 다른 표현으로 적자면 이렇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누구도 자신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될 수는 없다.’
이제 소설을 써야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저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다시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