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01/03 (13)
시간의재
아무 이유 없이, 밤을 새우게 되네. 이렇게 말이야.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잠이 안와서 말이야. 누군가 그러던데, 밤을 새우면, 그 피로가 한달을 간다고. 그래서 내 생활이 항상 엉망인지도 모르겠고. 군에 있을 때, 참 문장을 잘 썼던 쫄따구가 있었지. 키도 홀쭉하니 크고, 얼굴도 샤프한 것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여자 꽤나 울리고 다녔을 것 같은 녀석이었는데, 문장들이 참 좋았어. 그래서 제대하고 나올 때, 그 친구 노트를 훔쳐서 들고 나왔지. 근데 그 녀석 말이야, 군대에 적응을 잘 못했어. 항상 위태롭게 보였고, 결국에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후송'을 갔는데 그 다음에 내가 제대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지. 그래서 녀석 ..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을 더 이상 수정하지 않을 때는, 작품이 더 이상 손볼 데가 없이 완벽해진 때가 아니라, 작품에 질려버린 때다.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린 후에야, 소설가는 수정을 그친다. 완전함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꾸미다는, 꿈에서 파생된 말일까? 아니면, 꾸미다에서 '꿈'이 파생된 것일까? 그래서, 언제나 꿈은 '꾸며낸' 것인가?
확실히 그렇다. 사물의 이름에는, 뭐라해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침햇살'을 저녁에 먹었더니, 소화가 되지 않는다. 대체 음료수를 마시고 소화가 되지 않다니. '아침햇살'은 아침에 먹어야 한다. 아무 이유 없이, 햇볕에 바짝 마른 모래가 생각났다. 처음에는 그 색깔이 떠오르더니 - 그것은 마치 햇볕 그 자체인 것처럼 하얗다 - 나중에는 손가락 사이로 그 모래가 흘러내리는 촉감까지 분명하게 떠올랐다. 막연하게 생각하기를 이것은 일종의 상징으로, 현재 내 삶의 어떤 양태를 드러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꿈 같은 것이다. '햇볕에 바짝 마른 모래.' 이건 마치 화장하고 남은 재 같지 않은가?
잘 몰랐는데, 문득 보니까 3월이다. 2월이 끝난 줄도 모르고. 3월이다.